경복궁은 "조선시대 궁궐 중 가장 중심이 되는 왕조 제일의 법궁(法宮, 임금이 사는 궁궐)으로 태조 4년(1395)에 한양으로 수도를 옮긴 후 처음으로 세운 궁궐이다. 궁궐의 이름은 정도전이 『시경』에 나오는 “이미 술에 취하고 이미 덕에 배부르니 군자만년 그대의 큰 복을 도우리라”에서 큰 복을 빈다는 뜻의 ‘경복(景福)’이라는 두 글자를 따서 지은 것이다.
1412년 태종은 경복궁의 연못을 크게 넓히고 섬 위에 경회루를 만들었다. 이 곳에서 임금과 신하가 모여 잔치를 하거나 외국에서 오는 사신들에게 연회를 베풀었다. 태종의 뒤를 이은 세종은 주로 경복궁에서 지냈는데, 경회루 남측의 궐내각사 권역에 집현전을 짓고 학자들을 가까이 하였다. 또한 경회루의 남쪽에는 시각을 알려주는 보루각을 세웠으며, 궁궐의 서북쪽 모퉁이에는 천문 관측시설인 간의대를 마련해 두었다. 또한 흠경각을 짓고 그 안에 시각과 4계절을 나타내는 옥루기륜을 설치하기도 하였다.
경복궁은 임진왜란(1592)으로 인해 창덕궁·창경궁과 함께 모두 불에 탄 것을 1867년에 흥선대원군이 다시 세웠다. 그러나 1895년 궁궐 안에서 명성황후 시해 사건이 벌어지고, 고종은 러시아 공관으로 거처를 옮기면서 경복궁은 주인을 잃은 빈 궁궐이 되었다. 1910년 한일강제병합으로 국권을 잃게 되자 일본인들은 건물을 헐고, 근정전 앞에 조선총독부 청사를 짓는 등 궁궐의 대부분을 훼손함에 따라 점차 궁궐의 제 모습을 잃게 되었다. 일제강점기 이후 궁궐 안에 남아있던 주요건물은 근정문·근정전·사정전·천추전·수정전·자경전·경회루·재수각·함화당·집경당·향원정·집옥재·협길당 등이 있다." (출처: 문화재청)
경복궁 안내도 (출처: 경복궁 리플리트):
광화문과 흥례문 배치도 (출처: 경복궁 리플리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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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화문: 경복궁의 남쪽에 있는 정문으로서, 현재의 광화문은 2010년에 원래의 모습으로 제자리를 찾아서 다시 복원한 것임
광화문을 통해서 본 흥례문:
흥례문:
동십자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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