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합루와 영화당 구역을 감싸고 있는 작은 능선을 지나면 골짜기에 연경당이 자리 잡고 있으며 주변 환경은 아름다운 숲과 연못 및 정자 등이 어우러져 이상적인 경관을 이루고 있다. 

우측의 솟을 대문인 장양문은 사랑채로 통하고, 이 문을 지나 사랑마당에 들어서면 좌측에는 안마당과 사랑마당을 경계 짓는 담장이 꺾여 있으며 담장 가운데에 문인 정추문이 있다. 그리고 좌측의 평대문은 안채로 통하는 수인문이다. 

사랑채와 안채가 담으로 구분되어 있기는 하나 한번 꺾여 하나로 연결되어 있고, 전체 공간구성은 서로 연결된 만(卍)자 형으로 구성되어 있다. 연경당이란 이름은 원래 사랑채를 가리킨 것이었으나 지금은 이 건물들을 통틀어 연경당이라 부르고 있다. 사랑채의 오른편으로는 서재 구실을 하는 선향재가 위치해 있으며, 선향재 뒤편의 경사진 언덕에는 화계를 설치하고 제일 높은 곳에 농수정을 배치하였다. 

‘연경(演慶)’은 경사가 널리 퍼진다는 뜻이다.『궁궐지』에는 순조 28년에 총 120칸으로 건립하였다고 기록이 있고,『동국여지비고』,『한경지략』에는 순조 27년 건립하였다고 기록되어 있다. 

연경당은 효명세자가 순조와 순원왕후를 위한 잔치를 베풀고자 1827~8년(순조 27~8)경 지은 효심이 담긴 집이다. 창건 직후 연경당에서는 효명세자가 신하를 접견하거나 진작례를 거행하였다. 헌종 대 이후에는 익종(효명세자)의 어진과 모훈을 보관하는 곳으로 사용되다가 1857년(철종 8)에 터가 서늘하고 습하다는 이유로 익종의 초상화를 다른 곳으로 옮겨 한 동안 빈 집으로 남아 있었다. 그 후 고종 대에 이르러 외국 공사를 접견하고 연회를 베푸는 등 중요한 정치 공간으로 이용하였다. 

연경당은 건물배치와 공간구성 등에서 당시의 유교적 철학이 적용된 궁궐 내 사대부 집으로 당시의 주택과 비교해 볼 수 있는 한국주택사 연구에 있어 귀중한 자료이다. 또한 궁전의 조영법식과 기술력으로 건축되어 세련되면서 단아한 세부양식이 궁궐건축 고유의 품격을 잘 보여주고 있다. 이처럼 연경당은 조선시대 궁궐 내 사대부 건축으로서 그 가치가 뛰어나다." (출처: 문화재청)


연경당 전경:


정문인 장락문(長樂門):


사랑채로 통하는 장양문(長陽門):


사랑채인 연경당:


안채로 통하는 수인문(脩仁門):


안채:


안채에 마당에서 담장 너머로 본 사랑채:


선향재(善香齋):


안내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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