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독일어: Wien, 영어: Vienna)은 도나우 강변에 있는 오스트리아의 수도이다. 인구는 약 168만 명이다. (2009년 기준)

원시 시대부터 현재의 빈에 사람이 살았던 것으로 알려졌고, 기원전 15년에 로마군이 경계선을 세워 “빈드보나”라고 이름을 지었다. 게르만족이 거기를 차지할 때까지 로마의 지배를 받았고, 800년대 후반에는 마자르족이 빈을 통치하였다. 독일 황제군이 900년대 후반에 빈을 정복하였고, 1150년에는 바벤베르크 가문의 주요 관저가 되었다.

1273년에는 합스부르크 왕가의 루돌프 1세가 신성 로마 제국의 황제가 되었다. 빈은 합스부르크 왕가의 자리로서 번영하였다.

교통의 요지여서 11세기에는 십자군의 통로로서 융성하였고, 15세기 이후는 신성 로마 제국의 수도로서 발전하였다. 근세에는 오스만 제국군이 두 차례(1529년, 1683년) 빈 문턱 앞까지 왔으나 모두 저지되었다.

나폴레옹 전쟁 시기에는 프랑스군이 두 번이나 빈을 공략하였다. 지그문트 프로이트가 빈에서 《꿈의 해석》을 출간한 1900년경, 빈은 다소 고색창연하기는 하지만 우아한 대도시로 비쳐졌다. 도시 한가운데에는 성 슈테판 대성당이 우뚝 서 있었다. 대성당의 고딕식 첨탑은 바로크 스타일의 여러 교회를 보듬고 있었다. 법원 건물은 화려와 우울의 기묘한 결합이었다. 황제는 여전히 접시 오른쪽에 은제 식기를 놓고 스페인 식으로 식사를 했다.

제1차 세계 대전 후에는 오스트리아의 수도가 되었다.

1938년 독일이 오스트리아를 병합하자, 제2차 세계 대전까지 독일군이 빈에 주둔하고 있었다. 전쟁 말기 소련군의 공세로 벌어진 빈 공세는 베를린 공방전 다음으로 치열하였다. 1955년까지 연합국(미국, 영국, 프랑스, 소련)의 점령 아래 있었다.

독일어를 쓰는 오스트리아인이 대부분이며, 소수의 체코인, 헝가리인도 살고 있다." (출처: 위키백과)

빈 역사 지구(Historic Centre of Vienna)는 2001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지정되었습니다.

 

빈 왕궁(Hofburg) 정원의 모차르트 동상:


빈 왕궁 정원의 분수:

 

상부 벨베데레 궁전:

벨베데레(Belvedere) 궁전은 빈 남동쪽에 있는 바로크 양식 궁전으로서 상부와 하부 두 건물이 있습니다. 상부 궁전은 오스트리아 갤러리 박물관으로 사용되며 오스트리아 화가 Klimt의 작품을 세계에서 가장 많은 24점 소장하고 있습니다. 사진촬영은 금지하고 있으므로 소장 작품은 궁전 홈페이지(http://www.belvedere.at/en/sammlungen/belvedere/jugendstil-und-wiener-secession/gustav-klimt)를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상부 벨베데레 궁전에서 내려다 본 정원: 정원의 끝이 하부 벨베데레 궁전

 

하스 하우스(Haas Haus):

 

마리아 테레지아 동상:

마리아 테레지아(독일어: Maria Theresia, 체코어: Marie Teresie, 1717년 5월 13일 ~ 1780년 11월 29일)는 합스부르크 군주국의 유일한 여성 통치자이자, 합스부르크 왕가의 마지막 군주였다. 그녀는 카를 6세의 딸로서 전 유럽에서 가장 뛰어난 미모를 가진 여대공으로 널리 알려져 사람들로부터 인기가 많았다. 로트링겐의 프란츠 슈테판과 혼인하여 16명의 자녀를 낳았으며, 자녀들중에는 신성로마제국의 황제가 된 요제프 2세와 레오폴트 2세를 비롯하여 프랑스의 왕비 마리 앙투아네트 등이 있다.

 

빈 시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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