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가사유상(半跏思惟像):
원래 이 상은 부처가 태자였을 때 인생의 무상함을 느끼고 출가하여, 중생구제라는 큰 뜻을 품고 고뇌하는 태자사유상에서 유래한 것이다. 인도에서는 3세기경 간다라와 마투라 조각에 나타나며, 중국의 경우는 6세기 후반 북제시대에 가장 성행했으며, 주로 태자사유상으로 제작되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와 일본의 반가사유상은 미륵보살로 추정하고있다. 신라에서는 화랑을 미륵과 연결시켜 흔히 미륵보살반가상이라고 불렀다.
삼국시대인 6세기 후반부터 유행하기 시작하여 통일신라 초기까지 많은 반가사유상이 금동 또는 석조로 만들어졌는데, 대표적인 예로는 국보 제78호와 국보 제83호의 금동미륵보살반가상 을 들 수 있다. 이 반가사유상은 일본에도 전해져 많이 제작되었는데, 특히 고우류지에 있는 목조반가사유상은 국보 제83호의 반가사유상과 거의 같은 형태일 뿐만 아니라, 우리나라에서 제작된 상으로 추정하고 있다.
(출처: 다음백과)

 

현재 국립중앙박물관 <사유의 방>에는 우리나라의 국보 반가사유상 두 점이 나란히 전시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불교조각실>에도 반가사유상 4점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사유의 방

 

금동미륵보살반가사유상(1962-1) 국보 제78호

 

금동미륵보살반가사유상(1962-1) 국보 제78호

 

금동미륵보살반가사유상(1962-1) 국보 제78호

 

금동미륵보살반가사유상(1962-2) 국보 제83호

 

금동미륵보살반가사유상(1962-2) 국보 제83호

 

금동미륵보살반가사유상(1962-2) 국보 제83호

 

반가사유상(덕수 2327)

 

반가사유상(신수 4165)

 

반가사유상(덕수 3200)

 

반가사유상(M 33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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