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릉(貞陵):
조선왕조 태조의 계비 신덕왕후 강씨(神德王后康氏)의 능
서울특별시 성북구 정릉동에 있다. 1396년(태조 5) 신덕왕후 강씨가 죽자 태조는 능역을 황화방 북원에 정하고 그 동쪽에 재궁 흥천사를 세워 자주 행차했다. 그러나 태조가 죽은 뒤인 1409년(태종 9) 묘를 사을한 골짜기로 옮겼으며 종묘에 부묘하지 않고 왕비의 제례를 폐했다.
1410년 태종은 정릉의 석물 중 일부인 병풍석을 광교의 돌다리로 사용했으며, 그밖의 석재나 목재들을 태평관 건립시 부속재로 이용했다. 1581년(선조 14) 삼사에서 신덕왕후 강씨의 시호와 존호를 복귀하고, 정릉을 회복하자는 논의가 있은 뒤, 1669년(현종 10) 송시열(宋時烈) 등이 다시 신덕왕후 강씨를 종묘에 배향해야 한다는 차자를 올림으로써 비로소 본격적인 복구작업과 이에 따른 수호군 및 모든 상설을 구비하게 되었다.
*출처: 다음백과
*참고자료: 서울 정릉, 문화재청

흥천사(興天寺):
서울특별시 성북구 돈암동에 있는 절.
대한불교조계종 직할교구 조계사(曹溪寺)의 말사이다. 1395년(태조 4) 신덕왕후 강씨(神德王后康氏)가 죽자 1396년 능지(陵地)를 정릉(貞陵)에 정하여 조영(造營)하고, 그 원당(願堂)으로 능 동쪽에 170여 칸의 절을 세워 흥천사라 칭하였으며, 조계종의 본산(本山)으로 삼았다. 초창기 이 절은 좌선(坐禪)을 하는 것으로 항규를 삼았다.
1398년 6월에는 왕명으로 3층 사리각과 사리탑을 절의 북쪽에 세웠고, 7월에는 우란분재(盂蘭盆齋)를, 8월에는 신덕왕후의 천도회(薦度會)를 베풀었다. 그러나 1403년(태종 3) 태종이 이 절의 노비와 밭의 양을 감하게 하였고, 1408년의정부의 건의에 따라 이 절을 화엄종(華嚴宗)에 귀속시키는 한편, 태평관(太平館)을 철거한 뒤 그 밭과 노비를 이 절에 이양하였다. 1410년 태조의 유지(遺旨)를 좇아 절을 수리하였고, 이듬해에는 사리각을 중수하였다.
.... 1885년에는 대방(大房)을 중수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현존하는 당우(堂宇)로는 정면 3칸, 측면 3칸의 다포계(多包系)의 팔작지붕인 극락보전을 비롯하여 명부전·용화전(龍華殿)·칠성각·독성각(獨聖閣)·만세루(萬歲樓)·승방(僧房)·대방·일주문(一柱門)·종각(鐘閣) 등이 있다.
*출처:  다음백과
*참고자료: 흥천사

아래는 2021. 7.6 서울 정릉과 흥천사에서 담은 사진입니다.

 

정릉과 흥천사 안내문

 

정릉 입구

 

정릉 안내도

 

정릉 홍살문

 

정릉 전경

 

신덕고황후 능

 

정릉 재실

 

정릉 숲길

 

정릉 숲길의 소나무

 

정릉 숲길에서 만난 딱새 유조

 

흥천사 대방

 

흥천사 대방의 현판: 흥선대원군 글씨
흥천사 극락보전

 

흥천사 용화전

 

흥천사 명부전 후면부

 

흥천사 삼각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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